DSC_7082.JPG

우리나라에서도 남녀노소 대부분이 스케이트보드 단어를 낯설게 여기는 사람이 별로 없다.

스케이트보드의 나이는 생각보다 꽤 많이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전세계 어떤 누구도 스케이트보드의 기원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스케이트보드의 첫 고안은 서핑(Surfing) 매니아들에 의해서 고안되었다고 믿고 있고 어떤 이는 특정인물에 의해 개발되었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서핑을 즐기는 서퍼(Surfer)들에 의해 스케이트보드의 초기발전에 대해서는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Surfer에 의한 탄생설은 1950년대 서핑 매니아들은 파도가 잔잔할 때나 해변에 가지 못 할 때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육지에서 서핑과 유사한 느낌을 가질 수 있는 게 없을까를 고민하던 중 서핑모양의 판과 롤러스케이트의 바퀴를 달아 보는 시험을 하게 된다. 이것을 계기로 스케이트보드는 엄청난 발전과 경험을 통해 오늘날의 스케이트보드가 탄생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어쨌든 초기의 스케이트보드는 Surfboard의 디자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보드는 현재의 보드보다 훨씬 좁았고 스케이트보더들은 단순히 포장도로를 오르락 내리락 하며 경사지에서 원하는 쪽으로 방향을 트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그 이후 1960년대 DECK, WHEEL, TRUCK 스케이트보드의 기본구성품이 완성되어 오늘날의 스케이트보드로 발전해 오게 된다.

장비의 발전은 오랜 경험과 노하우로 발전해 갈 수 있었지만 스포츠의 대중화와 발전은 그리 순탄치 만은 안았다. 보더들은 보딩을 위해 Freestyle 뿐만 아니라 빈 풀장에서 보딩을 즐기기도 했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Halfpipe Ramp를 이용한 VERT 경기와 아스팔트 스케이트파크(Asphalt SkatePark)로 발전하게 된다.

원조 Street Skater 들은 보다 도전적인 기술을 선보이려 많은 것을 시도했고 그 결과 오늘날의 Street Skating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기물들이 선보이게 된다. 현재의 스케이트파크에 배치된 기물들이 바로 오랜 역사의 산실인 것이다.

스케이트보딩은 역사적으로 세번의 큰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그 첫번째로 1960대 중반이후 갑작스런 스케이트보딩 인구의 증가로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스케이트보드회사들은 너도나도 생산에만 치우쳤다. 그로 말미암아 보드장비의 소비자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품질과 무차별경쟁에 의한 이익감소, 스케이터들의 난립과 안전성없는 보더에 의한 부상사고등의 이유로 스케이트보딩의 탄생지인 미국의 수많은 도시에서 스케이트보딩을 금지하는 등 최악의 상황에 이르기도 했다.  

그 후 스케이트보드장비의 품질개선(특히 바퀴의 우레탄소재화)을 통해 부상의 위험을 크게 개선하게 되면서 다시금 스케이트보딩의 인구가 급격히 늘게 되었다. 이때가 1970년대이다. 

1970년대 후반스케이트보드파크의 보험문제등의 이유로 파크들은 속속 문을 닫게 되었고 때마침 BMX가 유행하기 시작되었다. 두번째 어려움을 겪게 되는 시점(1980년대 중반까지)이었다. 그 이후 파크문제가 해결되고 더욱 다양한 기물이 개발되면서 스케이트보딩은 계속 발전하게 된다. 특히 Halfpipe 기물은 스케이트보딩의 일대 혁신이었다. 

1979년 알렌 갤펀드로부터 버트 알리가 탄생한후 1983년 로드니뮬런에 의해 스트릿알리가 탄생된다. 그후 Rodney Mullen에 의해 킥플립 힐플립등 다양한 보드기술이 탄생되며 급속도로 인기가 커졌갔고 기존의 기성스케이트보드 회사에 반기를 품은 프로선수들이 속속 회사를 떠나 독립회사를 차리게 된다. 

그 첫 신호탄이 Steve Rocco 가 설립한 WORLDINDUSTRIES 이다. 그는 프로선수로서 많은 좌절과 고통을 이겨낸 라이더중에 하나이다. 그는 1987년 모든 스케이트보드회사들이 경영난에 빠져있을 때 그는 아무런 후원자도 없게 되었다.(그의 나이 27세 때였다) 그는 아버지의 세탁소일을 도울 수 밖에 없었다. 그 시점 Rodney Mullen 과의 행운적인 만남을 통해 1988년 WORLDINDUSTRIES 를 설립하게 된다.  

그는 기성적인 스케이트보드회사에 반기를 들며 최초의 반기성적(Anti-establishment) Skater로써 프로선수로 최초로 회사를 가지게 되었다.      

오늘날 WORLDINDUSTRIES는 미국내 스케이트보드장비시장의 최고를 자랑하게 된다. 현재의 스케이트보딩의 문화는 이들 반기성적 Skater들에 의해 완성된 문화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스케이트보딩은 1990년대 초반 경제불황을 극복하고 1990년대 중반 세계적 스포츠방송인 ESPN이 정규스포츠로 소개하면서 스케이트보드 역사상 최고의 날들이 이어오게 되있다. ESPN에서는 X-game이라는 타이틀로 방송을 하였고 이로인해 엑스게임이라는 고유명사가 탄생했으며 뒤늦게 타방송사에서 Gravity game이라는 타이틀로 스케이트보드대회가 방송 되었다.(실제 X-game이나 Gravity game은 방송 프로그램이름이다.) 

최근 LG에서는 Action sports Championships이라는 타이틀로 대회를 열고 있으며 04년에 우리나라에서 대회가 열리기도 하였지만 어째서인지 다음해부턴 열리지 않았다.  

오늘날의 스케이트보딩은 일반 야구,축구,롤러스케이트 등에 비해서도 다칠 확률이 더 작다는 미국통계를 보다시피 한국의 기성세대가 걱정하는 안전사고의 위험에서 벗어나 현재 스케이트보딩은 세계적으로 엄청난 숫자의 매니아들이 즐기는 대중스포츠가 되었다. 대중스포츠이면서도 스케이트보딩의 독특하고 다양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긴 역사를 자랑하는 스케이트보딩은 오늘날 익스트림스포츠를 선도하는 스포츠로 자리잡으며 패션과 문화에도 엄청난 영향을 주고 있는 스포츠이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 개인에 의해 소개되어 80년대와 90년대를 거치면서 차츰 성장해 왔지만 단절된 문화개방과 기성세대의 고정관념에 의해 고전하다가 1990년대 후반기부터 소규모 판매업자가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정식 보급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스케이트보딩은 영세수입판매업자의 난립과 경쟁, 불법수입유통판매, 상호불신, 기성세대의 고정관념등의 많은 문제점과 어려움으로 대중화의 발목을 잡고 있지만 원래의 스케이트보딩의 매력이 점차 전파되면서 관심과 보급이 크게 늘고 있다.

한국의 문화적 사회적 개방과 자유를 느끼게 된 것은 얼마되지 않았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자신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문화적 변화가 한국의 스케이트보딩의 보급에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의 스케이트보딩은 이제 시작인 것이다.

스케이트보딩은 자유를 느낀다. 진정한 자유만이 스케이트보딩을 유지하는 힘이다.